오랜만에 아들을 데리고 사우나를 다녀왔다.
요즘이야 매일 샤워에 개인위생들을 워낙 잘챙기는 시절이다보니 그렇게 자주 목욕탕을 다니지는 않는데, 어린시절에는 매주 하나의 집안일 처럼 루틴하게 토요일 목욕탕을 갔었던 것으로 기억이 된다.
혹시나 해서 구글이랑 네이버 검색에 그 당시 목욕탕 이름을 쳐보니(진해 두꺼비탕 - 지금 두꺼비사우나로 바뀜, 부유자탕) 그때 그 목욕탕들이 아직도 장사를 하고 있다니 참 신기할 따름이다.
해군이셨던 아버지, 격오지 근무랑 배도 꽤 많이 타셨던 터라 사실 어린시절 한참 아버지 그늘이 필요한 시절에 아버지에 대한 기억과 추억이 다른 사람들에 비해 현저히 적다.
요즘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초등 2학년까지 어머니와 누님들 따라 여탕엘 갔었다. 유치원 전후랑 초등 2년까지 대략 3년정도 아버지께서 목포, 흑산도쪽에서 배를 타셨기에 그랬던 것으로 기억된다.
이후 아버지 따라 목욕탕을 한 2년 다녔던 것 같다, 5학년부터는 좀 컸다고 동네 친구들과 다녔으니...
어린마음에 아버지와 목욕탕을 다녀 좋았던 점, 아버지랑 목욕을 하면 좀 자유로웠다, 어머니 따라서는 순 여자들만 있으니 돌아다니기도 뭐하고(어려서 뭐 그런것까지 그렇게 신경썼겠냐만은...), 같은반 친구들 만나지는 않을까하는 걱정을 덜기도 했고...
무엇보다 아버지와의 목욕이 달랐던 점은 평소 먹을 수 없었던 것들을 시원하게 쏘셨던 점이 아닐까?
아버지와의 목욕의 종착점은 가끔이긴 하지만 누님들 몰래 짜장면을 사주시기도 했는데, 지금이야 짜장면 뭐 그리 특별한 음식일까만은 당시 중국음식은 특별한 날에 한번 먹는 음식이었다.
옛날분들 이시라 눈에 딱 드러나진 않지만 가끔 아들 챙기는 것에 어머님께서도 눈을 감으셨기에 가능하지 않았나 싶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런 면에서 살짝살짝 내가 누님들에 비해 쬐금 더 혜택을 받은 것은 있는듯... 그놈의 아들이 뭐라고... ^^
그리고 바나나맛우유...
어린시절 우유하면 흰우유 그리고 부산우유가 떠오른다.
다른 지역도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당시 우유도 옛날 소주가 지역으로 나뉘어 판매되던 것과(경남에는 무학) 같이 부산/경남에는 부산우유가 주로 팔렸었다, 학교 급식도 부산우유였고...
그리고 뭐 첨가된 것은 몸에 안좋다고 흰우유만을 고집하셨던 어머니 철학으로 인해 초코우유, 딸기우유를 먹어본 기억이 없었던 시절, 더군다나 어머니와의 목욕은 집에 있는 흰우유를 목욕바구니에 챙겨가시는 알뜰함에 얄짤없이 흰우유...
아버지와의 목욕은 바나나맛우유를 마실 수 있다는 점, 어렴풋한 기억에 당시 흰우유가 백몇십원 하던 시절, 바나나맛우유는 삼백원이 넘는 우유였기에 아버지를 따라 나서야 한번 마시는 희귀템이라고 할까? 어머니의 투철하셨던 절약정신에 함부로 맛볼 수 없는...
세월이 흘러, 아버지가 아닌 아들과의 사우나... 모든게 풍족한 시절이라 목욕이 끝나고 다른 것 마실려고 하는 아들 손에 바나나맛우유를 집어줬다. 이거 아니면 안사준다고하는 협박(?)과 함께...
그리고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바나나맛우유에 대한 추억도 함께...
아버지와 나 사이의 추억은 이렇게 나와 아들과의 추억으로 되물림되었다. 아들에게 이게 추억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그 아버지는 안계신다, 아마 아버지께서 계셨었고 삼대가 사이좋게 사우나를 왔었다면 아버지께서는 손자 원하는걸 사주셨으리라, 그게 할아버지 마음이셨겠지...
목욕과 바나나맛우유에 짙게 어린 아버지에 대한 몇 안되는 추억이 소환되었다... 가슴이 따듯해지지만 한편으로 가슴이 먹먹해 지는 시간, 이렇게 하루가 또 흘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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